매서운 한파가 옷깃을 파고드는 계절, 집 안의 온기가 그리워도 잠시 밖으로 눈을 돌려보자. 손끝 이 시려도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아름다운 겨울 풍경들이 기다리고 있다. 얼음기둥이 자라나는 터널부터 유빙으로 가득 찬 해변, 눈꽃으로 뒤덮인 폭포까지. 겨울만이 선사하는 특별한 장면들 속으로 떠나본다.
중력을 거슬러 오르는 얼음기둥
연천 역고드름
터널 천장의 낙수가 순식간에 얼어붙어 만들어진 경기 연천 ‘역고드름’.
연천군 고대산 자락의 폐터널에서는 겨울마다 수백 개의 역고드름이 솟아오른다. 작은 것은 2cm 남짓, 큰 것은 사람 키를 넘을 만큼 자라며, 기온이 내려갈수록 더욱 빽빽하고 웅장하게 돋아난다. 천장에 매달린 고드름과 맞물리면 온갖 기묘한 형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독특한 현상은 전쟁의 여파로부터 비롯됐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의 탄약 창고로 쓰이던 중 미군의 폭격으로 상판에 틈이 생겼고, 이 틈새에서 떨어진 물줄기가 얼어 역고드름을 형성했다. 자연의 신비와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이 경관은 매년 12월부터 2월까지 관찰할 수 있으며, 안전상의 이유로 터널 외부에서만 관람 가능하다.
국내에서 만나는 작은 북극
강화 동막해변
한강과 임진강의 얼음 덩어리들이 흘러들어와 유빙으로 가득 찬 인천 강화 ‘동막해변’.
세계 5대 갯벌로 꼽히는 강화군의 ‘동막해변’은 평소에는 4km에 달하는 거대한 모래톱이지만, 겨울이 찾아오면 이국적인 유빙 풍경으로 변신한다. 한강과 임진강 유역에서 형성된 얼음 덩어리들이 밀물로 인해 강화도 해안까지 흘러와 해수면을 메운다. 유빙에 올라서 수평선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마치 북극에 온 듯한 사진을 남길 수 있고, 인근의 유형문화유산인 ‘분오리돈대’ 포토존에서는 유빙 사막의 전경을 찍을 수도 있다. 특히 해 질 무렵에는 유빙 위로 드리워진 낙조가 아름다워 일몰 명소로도 유명하다. 유빙을 보다 제대로 구경하고 싶다면 만조 시간을 미리 확인한 후 방문하면 된다.
산봉우리에 세워진 겨울왕국
속초 토왕성폭포
폭포수 대신 눈으로 뒤덮여 국내 최대 빙폭을 이루는 강원 속초 ‘토왕성폭포’.
설악산 해발 790m에 자리한 ‘토왕성폭포’는 눈이 내리면 압도적인 얼음 절경으로 탈바꿈한다. 상단 150m, 중단 80m, 하단 90m로 이어지는 3단 연폭(連瀑)이 온통 하얗게 변해 눈부신 설경을 이룬다. 국내 빙벽 등반의 성지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얼음벽을 오르는 산악인들의 모습은 이곳의 또 다른 흥미로운 볼거리다. 폭포를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비룡폭포 등산로에 위치한 전망대다. 실제로 토왕성폭포와는 1km 떨어져 있지만, 320m에 달하는 장엄한 폭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당이다. 전망대로 향하는 길에는 ‘소공원’과 ‘육담폭포’ 등 겨울 산세가 펼쳐지는 포인트들이 있어 긴 산행마저 즐겁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