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돈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박수남 대표. 그런데 농장을 꾸려가는 솜씨는 그 누구보다 특출나 보였다. 생산성적을 높이기 위해 현대화사업을 진행하는 한편, 시설에 맞는 방역 매뉴얼을 정해 건강한 양돈장으로 만들어 나간다. 또 농장 구석구석 살펴보며 정리 정돈을 꼼꼼히 하고, 기본 위생관리를 철저히 그리고 생활화해 질병을 줄인다. 현장에서 일하고 배우고 느낀 점을 적용하며 적극적으로 추진한 덕분에 이레농장은 흔들림 없이 성장하는 중이다.
나에게 맡겨진 일
박수남 대표는 2019년 4월만 해도 일본의 IT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날 부모님이 번갈아 가며 언제 한국에 한 번 안 오냐는 전화를 하셨다. 이유가 궁금해 여쭈니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짬을 내 한국에 들어왔는데, 이게 웬일인가. 부모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새로운 양돈장을 계약하신 것이었다. “제가 운영할 농장을 계약했다고 하면 일본에서 안 올까 싶어 안 하셨더라고요. 그렇게 일본 생활을 2개월 만에 정리하고 돌아와 양돈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농장을 알아서 꾸려나가 보라는 말만 남기셨고, 농장의 모든 것이 박 대표의 손에 맡겨졌다.
0에서 시작하기
인수한 농장의 첫 모습은 너무나도 막막했다. 분뇨가 너무 많이 쌓여 6개월 동안이나 치워야 했고, 비효율적인 돈사 구성도 새로이 해야만 했다. 현대화사업을 지원받아 2동을 새로 짓고, 3동의 내부는 수리했다. “저처럼 농장을 무모하게 출발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다른 농장이나 시설에서 교육을 받고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인 데 반해, 저는 한국에 온 당일에 바로 그것도 혼자 일을 시작했으니까요.” 터무니없는 계획에 도움을 준 이들도 있었다. “경력이 많은 직원분과 횡성 하늘가축약품의 배성원 부장님의 도움으로 사업에 대한 지식과 눈을 키우게 되어 감사하다는 말을 이렇게라도 전하고 싶네요.” 방역시설, 악취저감시설, 경관시설 등을 개선해 생산성을 향상하고, 소비자에게 안전한 한돈을 전하고자 한 덕분에 110두로 시작한 이레농장은 이제 사육두수 총 2,000두, MSY 19두, PSY 23.7두라는 생산성적을 내고 있다.
농장의 가치를 높여가는 노력들
조금씩 나아가는 듯싶었는데, 첫해 가을 ASF가 들이닥치며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방역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었는데, 이때 제 머릿속에 방역기준이 확립된 것 같아요.” 제천시에서는 ASF 발생 후 8대 방역 사업을 빠르게 진행해 한돈농가의 피해를 줄였고, 그 뒤로 ASF뿐 아니라 PED, PRRS 등의 질병도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 이레농장은 외부 울타리 작업뿐 아니라, 8대 방역 시설을 모두 완비한 상태다. 방역 외에 악취에 대한 고민도 함께해야 했다. “기존의 농장에서 환경이 많이 바뀌었고 악취가 덜 나 민원을 받지는 않지만, 그래서 꾸준히 더 신경 쓰고 있습니다.” 시에서 진행하는 에코 바이오사업을 통해 악취 발생을 줄이고,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노력을 다한다. 이 밖에도 액비순환시설, 안개분무시설, 바이오커튼, 스크러버 등도 고려하고 있다. 또 피그플랜에서 제공하는 보고서 등의 데이터를 활용해 농가 운영을 개선하고, 생산지표를 향상할 예정이다.
소통으로 이뤄낸 성장
2세 한돈인이라면 모두가 겪는다는 부모와의 의견 차이. 박 대표는 처음부터 부모님과 함께 준비하지 않았고 소통도 적었던 탓에 농장을 꾸려가는 상황마다 더 많은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견해차를 좁힐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제가 인정받기 위해서 사업장 안에서 무엇을 하려는지 먼저 자세하게 설명을 해드려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현장에서 축적한 노하우와 경험을 듣고 일을 진행하려 했죠. 다행히도 의견 대립은 사라졌고, 제가 하는 일의 방향을 섬세하게 잘 잡아주셨어요.” 일하면 할수록 부모님의 모습이 더 훌륭하게 느껴졌고, 존경스러움은 더없이 커갔다. “고작 5년을 이어오면서 내려놓고 싶다가도 30년 이상 농축산 사업을 하고 계신 부모님을 보면서 버티고 힘을 낼 때가 많았습니다.”
지속가능한 한돈산업을 위해
한돈협회 제천지부 사무국장인 박수남 대표는 한돈산업 전반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특히 해외 수입 의존도가 100%인 사료에 관한 걱정이 가장 크다. 사료값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만이 아니라 몇 년 전부터 대두되며 쌓이고 있으며, 생산비 증가로 한돈농가들의 힘듦이 갈수록 늘어나기 때문이다. 또 돼지고기 가격이 오른다고 단순히 수입으로만 시장 가격을 낮추려는 정부의 방침도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무분별한 수입은 한돈농가에 큰 타격을 주는 데다, 시장 가격에 반영이 되는지 의문도 듭니다. 수입해야 하는 쿼터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생산자와 구매자 모두 너무 힘든 상황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정부 기관이 인식을 개선해야만 한돈농가의 부담이 줄어들 테고, 환경도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다. 당면한 문제들을 인지하고 극복해나가려는 박수남 대표의 지혜로운 헤아림이 있기에 한돈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후계 한돈인들을 위한 사업이
좀 더 다양화되었으면 합니다.
해외연수프로그램이 있지만 정작 소규모
농장주들은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수 없고,
초청 세미나도 있지만 요즘에는 SNS상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돈자조금에서 후계 한돈인들의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직접적인 사업이나 혜택을
생각해준다면 좋겠습니다.”